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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엄마 혹은 이모들과 쇼핑을 다녀보면 결심을 하게 된다. 다음 백화점 세일 기간에는 심한 감기에 걸리겠노라고. 그러나 여자친구와의 긴 긴 쇼핑이라면 좀 참아줄 수도 있을 터, 그녀에게 쇼핑은 오르가슴에 비할 만큼 결정적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2. 군대까지 갔다 온 마당에, 누군가에게 간섭받고 잔소리 듣는 것은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다. 그 상대가 엄마 아니라 누구라 하더라도 말이다. 그러나 여자친구의 잔소리는 조금 다르다. 다소 귀찮을 때가 없지 않지만, 가끔은 가슴 뻐근한 감동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3. 눈물이 지나치게 많으면 가끔 짜증스러울 수도 있는 것이 사실. 그러나 여자친구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데 어느 용감함 남자가 짜증을 낼 수 있겠는가. 설사 그 눈물의 이유가 ‘아침 햇살이 너무 아름다워서’ 라는 식의 어처구니없는 이유일지라도 말이다.

4. 사람이 조심해야 할 3척이 있으니, 잘난 척, 예쁜(멋진) 척, 아는 척이다. 그러나 무엇이든 예외는 있기 마련, 내 여자친구라면 조금 참아 줄 수 있다. 척 좀 하면 어떤가? 자신이 전지현의 막강한 라이벌이라고 생각하는 정도만 아니라면 말이다.
5. 가끔 마주치게 되는 이디오피아형 체형을 가진 여자들이 있다. ‘마른비만’이라 명명되는 그 ‘배만 볼록 나온’ 체형을 보게 되는 것은 심히 깨는 일이다. 그러나 내 여자친구의 경우라면 기어이 발상의 전환을 하고야 만다. 배가 나온 게 아니라 단지 장기(臟器)들이 약간 돌출된 거라고. 단, 다른 부분들만 유지 해준다면 말이다.

6. 끝도 없이 말을 하려고 드는 여자를 만나는 일은 참으로 고역이다. 게다가 별 영양가도 없는 수다를 듣느라 불덩이 같은 핸드폰에 귀를 붙이고 있는 상황이라도 되면, ‘닭’ 목을 ‘쳐’서 입에 넣어주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진정 사랑의 힘은 크고 놀라운 지라, 쉴 세 없이 쫑알거리는 그 입이 내 여자친구의 입이라면 귀여운 맛에 참아줄 수도 있는 것이다.
7. 술이 사약이라도 되는 듯 생각하고, 남녀 7세 부동석을 좌우명으로 생각할 정도로 꽉 막힌 여자들이 있다. 그런 경우 ‘10시 통금’ 정도는 기본이다. 다른 여자 같았다면, 갑갑하고 재미없는 여자라며 상종도 말자, 다짐했겠지만 내 여자친구라면 달라진다. 이 감각적이고 즉흥적인 시대에 그녀 같은 꽃도 드문 것이다. 가치란 희소성과 맞물려 있는 것 이니, 사랑스럽고 믿음직스럽다.

8. 평소 ‘외모는 중요치 않다’고 소리 높여 주창해왔던 남자라 할지라도, 만날 때마다 무릎 나온 트레이닝복에 목 늘어난 티셔츠를 입고 나타나는 여자를 좋아할 리 없다. 다만 여자친구인 경우에만 겨우 용서가 되는 것이니, 그녀에겐 내면의 아름다움이 있다며 애써 위로해 보는 것.
9. 백화점 명품 매장 앞에서 자꾸만 발길을 멈추는 그녀. 안타까울 정도로 강하게 욕망하는  눈빛. 남들이 그건 허영심이라고 욕한다 해도, 남자는 괜찮다.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 먼 남자는 오히려 못 사줘서 미안해하는 바보가 되어 버리니까. 사실 다른 여자들이 그랬으면, 허파에 바람 든 X라고 욕했을지도 모른다.
10. 당연히, 남자는 여자를 공주처럼 모셔줘야 하는 거라고 은근히 주장하는 그녀들. 자신을 황후쯤으로 생각하는 것일까? 평소 툭하면 ‘네가 감히 어떻게’를 연발하는 그녀들의 불온한 사상을 내심 욕해 왔던 남자라도 여자친구의 경우라면 귀여운 응석정도로 받아 줄 수 있다.

11. 여자는 이슬 말고도 수 천 가지 음식을 먹고 살고, 물론 화장실도 간다는 것은 초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알아 버린 사실이다. 발 냄새는 물론 땀 냄새까지 홀딱 깨는 ‘체취’들이 어디 한두가지겠는가 만은, 내 여자니까 참아줄 수 있다.
12. 가끔 자신의 감정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여자들이 있다. 소나기만 내려도 우울해 지고, 작은 인형 선물에도 조증 환자처럼 흥분한다. 다른 여자 같았다면 ‘라이브 쌩쇼’를 한다고 생각했을지 모르나, 내 여자친구라면 소녀 감성을 지녔다고 생각한다.
13. 남녀가 평등하니 언제 어디서나 더치페이를 해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해왔던 남자. 평소 몇몇 여자들이 남자에게 술값, 밥값을 떠넘기려 하는 행태를 비난해 왔던 사람이라 하더라도 내 여자친구 앞에서는 관대해진다.

14. 아직도, 당연히 여자는 약속 시간에 살짝 늦어주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하는 어처구니  없는 여자들이 있다. 살인적인 뙤약볕에 30분이나 서있게 하고도 “어머 미안” 한 마디로 때우는 여자친구. 그 앙큼한 속이 뻔하지만, 내 여자친구니까 간신히 참아 준다. 물론 그 인내의 유통기한은고작 6개월 정도지만.
15. 확실하게 알고 있는 명백한 사실을 가지고 누군가 억지를 부리는 경우, 남자는 끝까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으려 할 것이다. 그러나 여자친구의 억지라면 그냥 수긍해주는 척 할 수 있다.설사 그녀가 고래를 파충류라고 끝까지 우긴다하더라도 말이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그날, 망키는 기분이 몹시 안 좋았다. 배구공을 발로 차고 있는 현장을 목격한 망키는 "배구공은 축구공이 아니다"라는 이의의 여지가 없는 정론을 내세워 우선 우리들의 뺨따귀를 갈겼다. 그리고 'S코의 방'이라 불리는 체육 주임실로 우리를 끌고가, 정좌를 하게 한 상태에서 토킹을 세 방씩 먹였다. 그 토킹이 적중하면 대개 으윽, 끄윽, 허억, 컥, 하고 만화의 말풍선 같은 신음을 토하는데 순신은 달랐다. 코로 황소 같은 숨을 내뿜을 뿐 절대로 소리를 지르지 않는다. 망키는 그게 또 마음에 들지 않아 순신만 일으켜 세워 따귀를 다섯 대 올려붙였다. 순신의 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망키는 속이 부글부글 끓어 "과연 조선 놈이 질기군"하고 조롱하듯 말했다. 순신은 그 말에 피식 웃음으로 대답했다. 그런데 순신이 정좌하고 있는 친구들의 줄로 돌아가려고 등을 보였을 때 망키가 그 등에다 대고 "이런 겁쟁이 같은 자식"하고 폭언을 했다. 망키는 실수를 했다. 순신의 눈꼬리 흉터가 순간적으로 빨갛게 물들었다. "배구공이 축구공이 아닌 것"처럼, "순신은 겁쟁이"가 아니다. 순신이 다닌 민족학교에는, '겁쟁이'라는 소리를 듣고서 싸움을 하지 않으면 반드시 왕따를 시킨다는 불문율이 있어, 그 소리를 들으면 조건반사적으로 펀치가 나갈 수밖에 없도록 성장한다.

그런 사연이 있으니, 뒤를 돌아본 순신은 망키의 아래턱에 묵직한 라이트 훅을 퍼부었다. 삼반규관이 순간적으로 마비된 망키는 평행감각을 잃고 무릎을 꺾었다. 순신은 정수리 머리카락을 움켜잡고 망키를 억지로 일으켜 세워, 이번에는 코를 표적으로 펀치를 날렸다. 퍽, 하는 소리가 나면서 코가 뭉개지자 순신은 표적을 바꾸어 신장 부근을 난타했다. 망키는 완전히 의식을 잃었고, 코에서는 피가 쿨럭쿨럭 쏟아져나왔다. 나는 때를 가늠해 말리려고 끼어들었다. 다른 친구들이 망키를 양호실로 데리고 가는 동안, 순신은 교실 의자에 고개를 푹 숙이고 앉아, 울음 섞인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전부 다, 물거품이 됐어."


<명상록>도 <선의 연구>도 <에크하르트 설교집>도 오트의 <성스러운 것>도 벤야민의 <폭력비판론>도, 모든 것이 망키의 한마디에 순신의 머리에서 날아가버리고 말았다. 나는 순신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면서 말했다.


"다시 읽으면 되잖아."


- 가네시로 가즈키, <레볼루션 No.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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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읽은 책은 이 표지가 아니었습니다. 재출간의 은혜가 가네시로 오라버니를 굽어 살피셨군요.



: 혹시 주변에 이런 사람이 있습니까? 험상궂게 생긴 <개그콘서트> 마니아, 그래서 무뚝뚝한 얼굴로 각종 최신 유행어를 구사하는 남자, 그런데 그게 농담이라는 걸 아무도 몰라주는 남자, 그래도 굴하지 않고 김구라 성대모사를 시도하는 남자, 그런데 다들 "이게 뭐야~"가 시비 거는 말인줄 알고 사색이 되고, 결국 맥 빠진 본인이 "농담이잖아..."라고 얘기할 때까지 주변 사람들을 모두 공포에 떨게 하는 남자, 그리하여 뒤늦게 긴장을 풀어본들 이제 와서는 별로 웃길 것 없는 농담으로 남은 남자. 그런 사람들은 썰렁한 분위기에 머쓱해지면 꼭 그럽니다. "네가 이해하기엔 너무 하이 코미디구나. 오늘 밤에 자려고 누우면 그제서야 낄낄 웃음이 날 걸?"

나도 그런 사람을 하나 압니다. 하루에도 열두 번, 아니 열두 번이 뭡니까, 대략 평균 5분 간격으로 "그걸 아는 사람이 그래!"라고 버럭 소리 지릅니다. 우락부락한 생김새와 그런 대사의 시너지, 네, 상당히 살벌합디다. 하지만 <개그콘서트>를 자주 보는 사람이라면 이것이 '집중토론' 코너의 유행어라는 사실을 금방 알게 되겠죠. 게다가 그는 가끔 확인도 합니다. "이거 웃기지, 응?" 처음엔 저게 대체 뭐 하자는 짓인가 싶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자꾸 보다 보면 그 사람 자체가 거대한 개그 코드로 보인다는 거예요. 어쩐지 생각할 수록 웃기는 겁니다. 반박자 어긋나는 괴팍한 타이밍, 폭력적인 말투로 쏟아내는 얄팍한 농담, 그런 와중에 듣는 이의 반응까지 은근히 의식하는, 한 마디로 몹쓸 무규칙 이종 코미디죠.        

위의 대목을 읽을 때, 저는 푸핫, 하고 웃다가 책에 침을 두어방울 튀겼습니다. '뭐가 그리 재미있냐'는 옆 자리 앉은 사람에게 손가락으로 그 페이지를 짚어 주었더니, 그럽니다. "에... 넌 이게 웃겨?" 네, 웃겨요. 그리고 가네시로 가즈키의 매력은 아마도 이 유머 감각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불가항력에 대한 불가항력적 울분+한국인의 혈맥을 따라 흐르는 비분강개형 다혈 기질+하드보일드 액션 서스펜스 리얼 하드고어+하이클래스 허무 개그...랄까. 꼭 남자 고등학교의 무덤덤한 익살꾼 같잖아요. 만담도, 성대모사도 안하지만, 왠지 웃기는 녀석 말예요. 가끔 주먹 다짐을 해서 입가가 푸르딩딩 해지기도 하는.
     

p.s. 가네시로 가즈키의 저 녀석들이 궁금하시거들랑, <레볼루션 No3> - <플라이 대디 플라이> - <스피드>의 순으로 읽으시기를 권합니다. 사실 뒤죽박죽 섞어서 읽어도 상관은 없지만, 저 순서로 읽어야 가장 재미있거든요.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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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들, 뜨지 말고 그냥 살아!


한국영화 속 사랑의 결론은 '죽거나 떠나거나' 둘 중 하나다. 한동안 여자배우 살아 있는 꼴 못 보는 감독들이 각종 질병을 검토해 '시한부' 딱지를 붙여댔다. 21세기 들어서는 여자 주인공 죽이는 게 너무 진부하다 생각했는지, 조폭 남자 주인공들이 우르르 등에 칼을 꽂았다. 이젠 웬만한 뮤직비디오도 다 따라할 만큼 닳고 닳은 설정이 되어 버렸지만, 어쨌든 심심하면 한국영화가 써먹는 수법이다. 죽거나 떠나거나.

그런데 2007년 연말, 이 '죽거나 떠나거나'에 새로운 트렌드가 만들어졌다. 사랑을 쫓다 지친 여자들이 외국으로 뜨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에서 한번쯤은 케이크 먹고 미니홈피에 기념사진 올리는 게 대세인 지금, 선남선녀들의 가장 큰 희망은 '유학'과 '여행'이다. 트렌드를 나름 제대로 반영했다는 평을 받았던 <싱글즈>에서 이미 이런 욕망이 등장했었다. 미래가 안 보이는 주인공 나난에게 월 1,000만원짜리 남자가 접근하더니 같이 외국 유학을 가자고 꾄다. 하지만 그렇게 남의 덕에 먹고 살면, 씹던 껌처럼 자기 친구를 차버리는 싸가지 없는 20대 명품족 여자애와 동급이 될까봐 마음을 접는다. 그리고 서울에서 친구와 '으샤으샤'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는 희망찬 청춘 스토리였다. <싱글즈>의 후예들은 어떠한가. 일단 <용의주도 미스신>을 보자. 요즘 야근 1순위 직업인 광고 AE가 어찌하여 남자 넷을 만날 시간을 빼냈는지 미지수지만, 어쨌든 주인공 한미수는 남부끄럽지 않은 남자 만나 남부끄럽지 않은 미래를 설계하고자 한다. 그러나 관계가 꼬이고 꼬여 결국 남부끄러운 상황에 봉착한다는 내용. 그리고 파리 유학을 간다나, 어쩐다나. 남자와 일 앞에서 악착같이 굴던 캐릭터가 '너 자신을 알라'란 충고 한마디에 어찌 이렇게 무너질 수가 있을까?


한예슬과 쌍벽을 이루는 21세기 한국미인 김태희도 <싸움>에서 한국을 뜬다. 결벽증 남편과 이혼한 뒤 공격을 받아온 그녀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계속 싸움에 휘말린다. 싸움 잘 하는 만큼 독립 의지도 강하다. 유리공예가인 그녀는 한 타임에 3,000만원이상 매출 나야 방송 가능하다는 홈쇼핑까지 출연해 물건을 판다. 공예가가 이 정도 인지도가 생겼다면 성공한 것이 아닌가. 그런데 화재로 작품을 잃고 설상가상으로 전남편과 죽을 듯 싸우고 난 뒤, 속세에 미련을 버렸는지 바로 뉴욕 유학을 준비한다. 유학을 떠날 거면 러닝타임 내내 프로페셔널 아티스트인 양 펼쳤던 노력은 뭐였을까? 가진 자의 아르바이트?


커리어우먼만 한국을 뜨는 것도 아니다. 하다못해 <색즉시공 시즌 2>의 여자 주인공은 대학도 마치지 않고 결혼한답시고 한국을 뜬다. 가진 것 없고 어리바리한 남자친구와 헤어질 수는 있다. 그런데 왜 꼭 마음에도 없는 부잣집 도련님에게 안겨 원치도 않는 미국행을 택하는 것일까? 그게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사실, 결말을 무조건 '공항'에서 수습하려는 방식은 게으른 거다. 물론 젊은 세대가 공항을 심하게 사랑하긴 하지만, 모든 개연성을 무시하고 공항만 보면 히죽거릴 만큼 헤프진 않다. 남자한테 채였다고 바로 유학을 선택하진 않는단 말이다. 여행이라면 모를까. 좋든 싫든, 오랫동안 자리 잡았던 조국을 뜨기 위해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야 한다. <용의주도 미스신>과 <싸움>과 <색즉시공 시즌 2>의 여자들은 심지어 고민을 나눌 친구도 없다(제작비가 모자라서?). 여자들이 유학에 대한 판타지를 가지고 있는 건 사실이다. 결혼문제 등등에서 벗어나 나이 초월해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바람인 거다. 하지만 판타지는 이룰 수 없어서 판타지다. <용의주도 미스신> <싸움> <색즉시공 시즌 2>처럼 간편하고 쉽게 이룰 수 있다면 애초부터 꿈꿀 거리 자체가 못된다. 한국영화들, 쓸데없는 판타지 양산 말고 한국에서 잘 사는 방법이나 찾아보라구!


* 이글은 지면에 실린 글을 옮긴 것입니다.

Posted by marsgirr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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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미지 갖다붙여 죄송 ^^;;

男 남자들은 이런 순간 결혼하고 싶어진다!


1 어떤 한 순간이라기보다 서른 둘을 넘기면서부터는 늘.
2 여자친구와 길을 걷는데 그녀가 팔짱을 끼며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댈 때.
3 지하철에서 귀여운 아기의 모습을 볼 때.
4 아무 조건 없이 나를 이해해주는 여자가 곁에 있다고 느낄 때.
5 여자친구랑 각자의 집으로 헤어지며 아쉬울 때.
6 멋진 가전제품을 보았을 때.
7 햇반에 컵라면 쓸쓸하게 혼자 먹을 때.
8 섹스하고 싶을 때.
9 다정하고 사랑스럽게 있는 커플을 볼 때
10. 모임에 나갔는데 나 혼자 싱글일 때.

女 여자들은 이런 순간 결혼하고 싶어진다!
 

1 남편이 돈 잘 벌어다 줘, 애는 가정부가 키워 줘, 경제적인 것에 전혀 영향을 안받는데다가 남편이 바람도 안 피는 유한마담 주부 친구를 볼 때, 그러나 난 피 토할 때까지 일해야 할 때.
2 어느 날 문득 내가 지금 당장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도 이미 늦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3 정기적으로 갖다 바치는 모텔비가 아까워 질 때.
4 영화나 드라마에서 완벽한 부부의 이상을 목격할 때.
5 홈쇼핑 채널을 보다가 엄청나게 저렴한 가격에 나온 혼수 인기 품목이라는 매끈한 홈바용 냉장고를 봤을 때.
6 야근 마치고 사무실을 나선 상황. 나는 택시를 못 잡아 애 먹고 있는데 마중 나온 남편의 ‘좋은 차’에 마님처럼 올라 타 유유히 사라지는 유부녀 동료를 목격했을 때.
7 저녁 때 헤어져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쉬울 때
8 혼수 준비하는 동료나 선배 언니를 볼 때. 고액의 가전제품이며 가구며 보석 등을 언제 또 저렇게 거침없이 사보겠나 싶어서.
9 부모로부터 독립해서 ‘내 집’ ‘내 공간’을 내 취향대로 꾸미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 때. 10 취향 잘 맞는 남편과 함께 배낭메고 일년에 한 번씩 세계 곳곳으로 여행을 떠나곤 하는, 일과 결혼생활을 근사하게 병립시키고 있는 여자를 목격했을 때.

*위 내용은 <ALLURE> 재직 당시, 주변 남녀를 대상으로 간단히 설문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작성되었습니다. 여자의 입장이 보다 구체적인 이유는, 제가 여자이기 때문이지요. ^^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TV를 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메리칸 아이돌>의 사이먼 코웰을 '8개국어에 능통한 기호학자이자 철학자, 불세출의 유머감각을 가진 칼럼니스트, 베스트셀러 소설가' 버전으로 업그레이드 하면 움베르토 에코가 될 지도 모른다고요.
, 압니다. 만약 움베르토 에코 아저씨가 들었다면 뭬야?!를 부르짖으며 일 디보(Il Divo) CD를 손날 격파할 소리지요. 하지만 유들유들함에 냉소를 가미한 후 약간의 유머감각을 곁들여 쏟아내는 사이먼 코웰의 독설은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움베르토 에코의 화법과 얇디 얇은 교집합을 이루는 것도 사실입니다. 절대로 틀린 얘기를 하는 법은 없다는 점이 특히 그렇습니다.   

자, 그렇다면 이쯤에서 아래의 글을 읽어BOA요



글을 잘 쓰는 방법

인터넷에서 나는 글을 잘 쓰는 방법에 대한 일련의 지침들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것을 약간 수정하여 내 것으로 삼았다. 많은 사람들, 특히 글쓰기 학교에 다니는 사람들에게 유용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 두운을 피하라. 비록 올빼미들을 유혹할지라도. (역주: 이탈리아 어로 allitterazione(두운), allettare(유혹하다) 그리고 allocco(올빼미)는 두운이 일치한다)
2. 접속사를 피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오히려 필요할 때는 쓰도록 한다.
3. 기성품 문장들을 피하라. 그건 <다시 데운 수프>와 같다.
4.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라. 자신을 살찌우게 하니까.
5. 상업적 기호&약자etc.를 사용하지 마라.
6. 괄호는 (꼭 필요해 보일 때도) 담론의 흐름을 방해한다는 것을 (언제나) 기억하라.
7. 말없음표들의…… 소화 불량에 걸리지 않도록 주의하라.
8. 가능한 한 따옴표를 적게 사용하라. 그것은 "목표"가 아니다.
9. 절대로 일반화하지 마라.
10. 외국어는 절대 엘리건트한 스타일을 만들지 않는다.
11. 인용을 줄여라. 에머슨이 올바르게 지적하였듯이 <나는 인용을 증오한다. 단지 네가 아는 것만 말해라>.
12. 비유는 기성품 문장과 같다.
13. 과잉 설명을 하지 마라. 똑같은 말을 두 번 반복하지 마라. 반복한다는 것은 불필요하다(과잉이라는 말은 독자가 이미 이해한 내용을 불필요하게 다시 설명하는 것을 의미한다).
14. 단지 똥 같은 놈들이나 저속한 말을 사용한다.
15. 언제나 대충 구체적이도록 하라.
16. 단 하나의 단어로 문장을 만들지 마라. 없애라.
17. 지나치게 과감한 은유들을 조심하라. 그것은 뱀의 비늘 위에 돋은 깃털과 같다.
18. 쉼표는, 정확한 곳에, 넣도록 하라.
19. 콜론과 세미콜론을 구별하라: 비록 쉽지 않을지라도.
20. 만약 적절한 이탈리아 어 표현을 찾지 못하더라도 절대로 사투리 표현에 의존하지 마라. <페소 엘 타콘 델 부소.> (역자 주: peso el tacon del buso. 베네치아의 사투리 속담으로, 병보다 오히려 치료가 더 나쁜 경우를 가리킨다.)
21. 어울리지 않는 은유를 사용하지 마라. 비록 <노래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것은 마치 탈선한 백조 같다.
22. 정말로 수사학적 질문이 필요한가?
23. 간략하게 하라. 긴 문장을 피하고, 가능한 적은 숫자의 단어 안에다 자신의 생각을 압축하도록 노력하고-또는 삽입구를 넣지 마라. 그것은 불가피하게 산만한 독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드니까- 그리하여 담론이 분명히 매스 미디어의 권력에 지배되는 우리 시대의 비극들 중 하나를 이루는(특히 불필요하거나 필수 불가결하지 않은 자세한 정보들로 쓸모없게 채워졌을 경우) 정보의 오염에 기여하지 않도록 하라.
24. 과장하지 마라! 감탄 부호를 적게 써라!
25. 야만적 표현을 좋아하는 최악의 <팬들>이라도 외국어를 복수로 만들지 않는다.
26. 외국어 이름을 정확하게 써라. 가령 보둘레르, 루즈웰트, 니채 등처럼.
27. 언급하는 저자나 등장인물들을 완곡하게 표현하지 말고 직접 지명하도록 하라. 19세기 롬바르디아 출신의 최고 작가이자, <5월 5일>의 작가도 그렇게 했다.
28. 글의 첫머리에서 독자의 환심을 사기 위해 <감사의 표시>를 하도록 하라(그런데 혹시 여러분이 너무나도 멍청해서 내가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29. 철자를 자새하게 학인하라.
30. 반어법은 얼마나 지겨운 것인지 말할 필요도 없다.
31. 너무 자주 문단을 바꾸지 마라.
최소한 불필요할 때에는.
32. <위엄 있는> 1인칭 복수를 절대 쓰지 마라. 우리는 그것이 나쁜 인상을 준다고 확신한다.
33.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지 마라. 오류를 범하게 될 것이며, 따라서 실수할 것이다.
34. 논리적으로 결론이 전제에서 도출되지 않는 글을 쓰지 마라. 만약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한다면, 전제가 결론에도 도출될 것이다.
35. 옛날 표현이나 <아팍스 레고메나>처럼 이례적인 어휘들, 리좀 같은 <심층 구조>를 너무 많이 사용하지 마라. 그것들은 아무리 그라마톨로지적 <차연>의 현현이나 해체론적 표류에의 권유처럼 보일지라도-만약 그것이 극도로 세심한 문헌 비평 의식과 함께 읽는 삶의 세밀한 검토에 의해 논박의 여지가 있는 것으로 드러날 경우 더 나쁠 것이다-어쨌든 수신자의 인지 역량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36. 너무 장황하지 않도록 하라. 그렇다고 그보다 덜 말하지 않도록 하라.
37. 완성된 문장이 되어야 하는데
(1997)
- 움베르토 에코, <미네르바 성냥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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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보는 표지는 이것보다 양호합니다.





한동안 지하철 4호선과 7호선에서 절찬리 애독했던 <미네르바 성냥갑>은 움베르토 에코가 얼마나 귀여운 독설가인가, 그리고 그 톡쏘는 말 맛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한국어 역자는 또 얼마나 귀엽지 못한가를 생각하게 했습니다. 이탈리아의 유명 주간지 '에스프레소'에 연재되었던 짧은 칼럼들을 모은 책이고요, 국내에 몇 년 앞서 번역 출간된 전작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보다 좀더 날카로운 주제를 좀더 날카로운 말투로 건드렸다는 인상입니다... 저... 거기... 혹시 지금 주무시는 건가요...? 잠깐만요, 거의 끝나가거든요? 그러니까 에... 정치나 미디어 같은 격렬한 주제보다는 맛 없고 소화도 안되는 기내식에 대한 철학이 한결 투철한 - 말하자면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사람 같은 - 분이라면 <세상의 바보들에게...>를 먼저 읽으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진짜 만화책만큼이나 낄낄거리면서 읽게 된다니까요.    
솔직히 말해서, 움베르토 에코의 이 글이 뭐가 웃긴지 모르겠다는 사람과는 도저히 친해질 자신이 없지 뭐예요.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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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 애썼다!


아테네 올림픽 당시 최고 기대 종목은 다름아닌 축구였다. 2002년 월드컵 4강까지 올랐던 축구가 국민적 기대와 상관없이 덜컥 메달순위권에서 멀어져버렸고, 심심하던 기자들은 꾸역꾸역 이기고 있던 여자핸드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2004년 8월 29일 결승전에 다다랐다. 후반 막판에 동점, 연장 전후반 동점, 결국 승부던지기까지 이어졌다. 안타깝게도 은메달로 확정됐지만, 땀으로 범벅이 된 선수들의 모습이 그렇게 감격스러울 수가 없었다. TV 카메라 앞에서 눈시울 적시던 남자 감독은 비인기 종목의 서러움까지 북받쳐 더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하 <우생순>)은 본 사람이라면 절대 잊을 수 없는 그 경기,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여자핸드볼 결승전을 소재로 한 영화다. 쉽지 않은 선택이다. '한국에서 스포츠 영화는 안된다'는 말은 지금까지 절대명제였고, 더군다나 핸드볼은 농구나 축구처럼 화려한 테크닉을 자랑하는 역동적인 스포츠가 아니다. 초점은 역시나 드라마다. 임순례 감독이 프로젝트에 합체하면서 '아줌마'라는 화두가 떠올랐다. 영화적 드라마 장치를 세운건 <화려한 휴가>의 나현 작가였지만, 마무리는 임순례 감독의 몫이다.

영화의 주된 축은 미숙(문소리)와 혜경(김정은)이다. 서른 넷 동갑의 핸드볼 선수인 두 아줌마의 인생여정은 아주 많이 다르다. 미숙은 소속 실업팀이 해체되서 개별 사원으로 재고용한다는 숙연한 감독에 말에 "그래도 정규직이겠지?"라며 '아줌마9단'다운 눈치없는 발언을 날린다. 남편의 빚에 허덕이면서 애 하나 키우기도 더럽고 치사한 상황. 돈도 안되는 핸드볼이 눈에 들어올 리 없다. 그녀 생각에 자신은 한마디로 '돈도 안되는 재능'을 갖고 태어난 참 박복한 년인 셈이다. 반면 좀 있는 집 자식처럼 보이는 혜경은 가방끈 늘인 다음 일본에서 감독으로 활동했다. 아이 하나 있는 이혼녀지만 생활은 어렵지 않다. 더군다나 능력을 인정받아 아테네 올림픽 국가대표팀 감독대행으로 스카웃되어 한국에 돌아온다. 그야말로 '알파녀'의 원조격인 아줌마다. <우생순>에서 계속 갈등으로 내세우는 건 미숙의 삶과 혜경의 커리어가 부딪히는 부분이다. 곧 이들이 함께 맞서야할 새로운 편견이 등장하니, 바로 '아줌마'다. 신인 선수들의 눈총과 나름 권력자들인 협회 남자들 앞에서 삼십대 아줌마들은 똘똘 뭉쳐 버린다. 그리고 여기에 끼어드는 코드 하나가 '한국형 핸드볼'이다. 90년대를 휘어잡았던 여자핸드볼의 자랑스러움은 테크닉이 아니라 '억척스러움'이었다는 사실. 새시대의 새로운 사람들은 계속 '선진화' 운운하며 세련된 방향을 요구하지만 아줌마들은 그런 거 모른다는 듯 개무시하고 몸에 익은 고전적 방식을 고수한다. 그리고 '시크한' 요즘 사람들에게 묻는다. 억척스럽게 사는 게, 그렇게 나빠?

<우생순>에서 가장 생소하면서 반가운 지점은 '핸드볼'이 아니라 '아줌마'다. 남자들의 하소연만 가득하던 스크린에 아줌마들의 삶이 대놓고 등장하는 것이다. 이들은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일인자가 아니다. 명예에 대한 욕심도 없고, 그냥 할 줄 아는 게 핸드볼 뿐이다. 후반의 핸드볼 경기는 남자들의 스포츠 영화만큼 비장하지 않다. 애국심? 그런 거 없다. '그냥 재미있어서 해요'라는 취미생활의 진화도 아니다. 그냥 여자들끼리 함께 모여 무언가를 해낸다는 소박한 의지가 빛날 뿐이다. 단지 포기하기 싫어서. 남에게 지기는 죽어도 싫어서.
한국 아줌마들의 이런 '무목적적' 도전정신이 일면 불편한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같은 여자로서 연민은 느낄만 하다. 그들은 취미로 스포츠를 즐길 만큼 여유로운 시대의 세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핸드볼에 회의하던 미숙은 예전 감독이 가르치는 초등학교를 찾아가 핸드볼을 하던 여자아이와 잠깐 대화를 나눈다. "핸드볼 재미있어?" "재미있어요." 어쩌면 그녀의 다음 세대는 핸드볼의 '재미'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누군가의 모범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영화로도 만들어질만큼.

<우생순>이 영화적으로 잘만든 영화일까? 꽤 열심히 만든 장르영화라고는 할 수 있다. 나현 작가는 <화려한 휴가>처럼 가능한 갈등들을 솜씨좋게 배열했다. 지루함을 방지하는 조연의 배치(김지영과 조은지)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래서 <우생순>은 임순례 영화들 중 가장 장르적이고, 가장 단순하고, 가장 억지스럽게 감동을 불러 일으킨다. 임순례는 한번도 자신의 영화에서 영악하게 눈물을 요구한 적이 없다. 그러나 <우생순>은 실화의 힘까지 보태져 막판 대감동의 물결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임순례가 아니었다면 애정을 가지고 이렇게 열심히 아줌마들을 쓰다듬어주지 못했을 거다.
결국 이 영화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 스포츠 영화도 재미있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아줌마들의 이야기도 가치 있다는 점이다. 임순례 영화치곤 다소 실망스럽지만 이런 장점들 때문에 <우생순>을 욕하긴 쉽지 않다. 여자 입장에선 더더욱 그렇다.

+ 쓰다 보니 길어졌어요. 죄송.(계속되는 티스토리 에러로 더 고생)
+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족. <우생순> 인물같은 아줌마들 일상에서 만나면 굉장히 피곤할 것 같아요. 지하철 자리 하나 놓고 심하게 경쟁하실 분들로 보이거든요. <우생순>은 그런 아줌마들의 고단함을 한번쯤이나마 생각을 하게 만들어요. 그들이 가진 공동체적 가치와 함께.

Posted by marsgirrrl


에스키모, 아니 '이누이트' 부족이 눈(snow)을 묘사하는 단어와 표현은 수백가지나 된다, 왜냐하면 인간의 언어란 결국 그를 둘러싼 세계를 질료 삼아 빚어지기 때문이다...라고 썼더라면 폼이 제대로 날 뻔 했습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어요. 이게 엄청난 과장이었다는 걸 얼마 전에야 알게 됐지 뭡니까. 실제로 그 사람들이 사용하는 눈에 대한 어휘는 네 개뿐이래요. '하늘에서 내려오고 있는 눈(가나 gana)', '땅에 내려앉아 쌓여있는 눈(아풋 aput)', '바람에 이리저리 휘날리는 눈(픽써폭 pigsirpog)'. '바람에 휘날려 무더기로 쌓여있는 눈(지먹석 gimugsug)', 이렇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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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을 읽다 보면, 그게 전부 과장만은 아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의 행간에 깃든 눈과 얼음의 세계는 무한한 바다만큼, 영원한 우주만큼이나 너비와 깊이를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페터 회(장난으로 그럼 이 사람은 회페터야? 그럼 회선생이겠네? 응응?” 따위를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잘도 주절댔던, 낯선 이름의 덴마크 작가죠)의 문장 또한 얼음물 속에서 뜨거워지는 몸처럼(한겨울에 산에서 냉수마찰 해보신 분들은 이게 뭔 소린지 다 아실 겁니다), 얼음에 덴 화상처럼 차가운 듯 뜨겁고, 폭발적이면서도 서늘합니다. 가장 단정한 수학식처럼 한 단어 한 단어 또박또박 낭비 없이 사용했는데, 어쩐지 읽을수록 서서히 빠져드는, 발가락 끝부터 머리 꼭대기까지 저항할 수 없이 젖어 드는, 매 단어의 의미를 곱씹고 싶은, 무한대로 수렴되는 눈과 얼음의 세계를 남김 없이 알고 싶어 조바심이 나는, 왼쪽에 쥔 페이지가 늘어날수록 오른쪽에 쥔 페이지가 점점 줄어드는 게 안타까워 눈물이 날 것 같은, 그런 글입니다. (인터넷 서평을 읽다 보니 의외로 이 책의 번역을 지적한 글들이 눈에 띄었는데, 나로서는 다소 의아한 일이었습니다. 번역에 꽤나 민감한 편인데도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점을 전혀 못 느꼈을뿐더러, 오히려 번역자의 담담한 글 투가 스밀라와 꽤나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거든요.)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대단히 과장된 얘기다. 사랑에 빠지는 것은 상대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으리라는 두려움 45퍼센트와 이번에는 그 두려움이 무색하게 되리라는 광적인 희망 45퍼센트, 거기에 소박하게 사랑의 가능성에 대한 여린 감각 10퍼센트를 더하여 이루어진다. 나는 더 이상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 내가 더 이상 볼거리에 걸리지 않는 것처럼. ...(중간 생략)... 나는 사랑에 빠진 적이 없다. 그러기에는 지나치게 명확하게 사물을 바라본다.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광기의 한 형태다. 증오, 냉담, 분노, 중독, 자살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 페터 회,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 앞에서 굳이 이누이트 족을 들먹인 이유는, 이 책의 주인공인 '스밀라'가 덴마크의 유복한 의사인 아버지와 이누이트 사냥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젠체하는 문명과 무심한 자연의 경계선에 서 있는 존재랄까요. 복잡할지는 몰라도 혼란스럽진 않은 인물 같았습니다. 스밀라 역시 눈처럼, 얼음처럼, 차가운 이성으로 뜨겁게 움직입니다. 그녀는 키 160센티미터에 몸무게는 고작 50킬로그램(그린란드의 강풍과 추위를 생각하면 너무나 왜소한 체격인 겁니다), 사람보다는 눈과 얼음을 신뢰하고 수학의 완벽함을 신봉하는 사람입니다. 또 그녀는 37세의 독신녀입니다. 그러나 그녀를 움직이게, 어떤 사건에 뛰어들게 한 것은 이웃집 아이의 죽음이었어요. 가장 의외의 순간에 따뜻한 속내를 보일 것 같은 사람, 실연 당했다고 질질 울면서 찾아가면 같이 침 튀기며 비열한 ex’를 욕하는 대신 끝맺는다는 게 그래같은 건조한 비평을 하고는 시커멓게 번진 마스카라를 닦아주고 자기 침대에 재워줄 것 같은 언니입니다.

실은 이 책을 읽었던 2005년의 기분이 그랬어요. 책 소개에 보면 추리소설로서의 매력뿐만 아니라 미스터리와 로맨스, 스릴러, 문명 비판, 철학적 통찰 등 각 장르의 요소들을 적재적소에 구현하고 있는 작품이랍디다마는, 그 무렵 가망 없는 감정에 허덕이던 눈에는 유독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 그 너머로 흐르는 시간, 불가항력적이고 불가해한 것, 사랑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 그런 구절들만 밟혔습니다.    



나는 결코 수리공을 알았던 게 아니었다. 몇 시간 전까지 나는 우리가 침묵으로 맺어진 유대감의 순간을 공유했다고 생각한다. 그가 그린란드 스타의 승강대를 가로질러 걸어가는 것을 보았을 때 나는 우리가 언제나 낯선 사이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젊었을 때는 섹스가 친밀감의 정점이라고 생각한다. 나중에 섹스는 거의 시작에 미치지도 못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 페터 회,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 어쩌면 나는 이 책을 완전히 오독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나는 이 책을, 살인 스릴러가 아니라 철학적인 로맨스로 읽었습니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으니까요. 그렇지 않았다면 그 두꺼운 책 어딘가에서 가슴이 뻐근해지는 일도 없었을 테고, 지하철 4호선의 어딘가에서 남몰래 눈물을 훔치는 일은 더더구나 없었을 거예요.



살은 빠져서 수척한 수준에서 깡마른 수준으로 바뀌고 있다. 잠은 모자라 눈은 눈구멍 속으로 퀭하니 패어 있다. 하지만 아직도 나는 거울 속의 낯선 사람을 보고 미소짓는다. 인생에서의 행복과 슬픔의 분포는 간단한 산수로 얻을 수 없고 표준 할당 같은 것도 없다. 인생을 살 만한 가치가 있게 해주는 몇 안되는 사람들 중의 하나가 크로노스호에 타고 있다. - 페터 회,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 끝내준다능, 오나전 킹왕짱이야. 우왕ㅋ굳ㅋ … 이렇게 호들갑을 떨 마음은 없었습니다. 그렇게 보이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이미 늦었는지도 모르지만요.)    




내 어머니가 돌이오지 않게 되었을 때, 나는 어떤 순간도 마지막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생의 어떤 것도 단순히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가는 통로가 될 수는 없다. 마치 남겨놓고 가는 유일한 것인 양 매 걸음을 떼어야 한다.
- 페터 회,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 2005
1228
의 일기를 꺼내봤습니다. 아마 <스밀라…>를 다 읽었거나, 최소한 절반 이상 읽은 날이었겠죠. 위의 대목을 발췌해놓고 이렇게 한 줄 썼더군요. “아아, 이 책을 이제서야 읽게 되다니. 슬프다. 기쁘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연초, 브리짓 존스처럼 'all by myself'만 부르짖는 인생이라면. 다음의 리스트가 도움이 될 듯. '혹시 저 여자가 나를?.....'이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는 순간, 남자의 머리속엔 이미 상대 여자에 대한 관심이 이전보다 최소 2% 이상 파워 업!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 반면 절대 마음 줄 일 없는 남자라면, 아래 리스트의 언행은 절대로 하지 말 것. 별 볼 일 없는 남자, 왕자 만들어주는 것만큼 하늘 아래 비생산적인 일 또한 없을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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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자 메시지를 빈번하게 보내올 때, 잊을만하면 한번씩 전화를 걸어올 때.
2 디지털 카메라로 셀프 컷을 나와 함께 찍으려고 할 때. 그러면서 팔짱 낄 때.
3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귓속말을 하거나 근접해서 속삭일 때.
4 술자리에서 잠시 바람을 쐬러 간다며 같이 가자고 할 때.
5 생일이 아닌데 뜻밖의 선물을 챙겨줄 때.

6 내 미니홈피, 블로그에 지속적으로 흔적을 남길 때.
7 불현듯 술 한잔 하자고 연락 올 때.
8 여러 사람이 함께한 자리인데도 자꾸만 시선이 마주칠 때.
9 연애사, 집안사 등 꺼내기 쉽지 않은 고민 상담을 해올 때.
10 헤어진 연인에 대해 궁금해하며 캐물을 때.

11 회식이나 파티에서, 화장실에 다녀온 뒤 내 옆으로 옮겨 앉을 때.
12 유난히 내게만 까탈스럽게 행동하거나 시선을 피할 때.
13 생일이나 좋은 일 있을 때 축하해달라고 강권할 때.
14 나의 행동, 나의 능력을 과찬할 때. 나의 의견에 대체로 찬성할 때.
15 뻔한 내용을 묻기 위해 늦은 시간 전화해왔을 때. 얼굴 본지 얼마 안 돼 또 전화해올 때.

16. ‘너 안 나가면 그 모임에 나도 안 나가려고…’식의 멘트를 들을 때.
17. 집에 데려다 달라거나 내게 택시 잡아달라고 부탁할 때.
18. ‘그녀와 헤어지면 나한테 와버려’ 등 실없는 농담을 해올 때.
19. 내 앞에서 눈물 보일 때. 물어봐도 이유를 말하지 않을 때.
20. 힘들거나 우울할 때 내게 ‘같이 있어주면 안돼?’ 부탁할 때.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10분 정도 일찍 도착했는데, 장내는 이미 만원이었습니다. 진행요원들은 앉을 자리를 찾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서둘러 여분의 의자를 들여왔습니다. 프랑스 문단에서 한국소설을 대표하는 작가 황석영과 프랑스 현대소설의 거장 르 클레지오 공개대담 및 낭독회라는 길고 긴 제목의 행사인데도 그랬습니다(행사의 제목이 길면 대개 지루하기 마련이잖아요). 얼른 자리를 찾아 앉은 내 옆으로, 한국어, 프랑스어, 일본어의 조각을 흘리며 다양한 생김새의 사람들이 지나갔습니다. 이곳은 이화여자대학교 국제교육관이고, 관객들이 충심으로 도열한 정면으로는 황석영과 르 클레지오가 담담한 얼굴로 앉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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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부한 단어이긴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사내를 떠올리게 하는 황석영 선생수줍과묵의 중간지점쯤에 서 있는 듯한 르 클레지오는 여러 가지로 대비가 되는 조합이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프랑스인과 한국인이라는 국적을 넘어, 이주자의 후손(르 클레지오는 아프리카에서 자랐고, 황석영은 만주 장춘에서 태어났습니다)이자 정신적인 국외인이라는 공통점을 지녔지요. 쾌활한 황석영 3세 연상인 르 클레지오를 형님이라 부르고("르 클레지오 형님과 불어로 얘기를 나눌 수 있도록 불어를 좀 배워볼까 합니다"라고 황석영 선생이 말하자, 옆에 있던 최미경 교수가 "르 클레지오 선생님과 불어로 대화를 할 만큼 불어를 익히시려면..."이라며 말 끝을 흐렸습니다), 두 작가 모두와 번역 작업으로 인연이 있는 최미경 교수가 진행을 맡은 덕분에 대담장의 공기는 날 서지 않은 지적 자극으로 기분 좋게 달아올랐습니다. 사실, 이 낭독회에 가게 된 것도 2년 전 쯤 취재를 인연으로 만난 최미경 교수님이 초대를 해주신 덕분이었어요. 서로의 모국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두 소설가를 나란히 모시고 진행하는 대담회 치고, 어색한 침묵 한 번 없이 그토록 매끄럽고 유쾌하게 이어지는 행사는 정말이지 처음 봤습니다. 결국 나는 촬영을 끝낸 사진기자가 '어서 가자'며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보채는데도 차마 자리를 뜨지 못하고 끝까지 남아 있었습니다. (먼저 가라며 등을 떠미니 사진기자가 눈을 흘기더군요. 이런, 신체건강한 대한민국 육군병장 소녀 같으니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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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대담이 끝난 후 있었던 두 소설가의 낭독이었습니다. 황석영 선생의 낭독을 직접 들은 것은 처음이었는데, 스스로
황구라를 자처할 정도로 입담이 좋은 줄은 알았지만 책 읽는 소리가 그리 유려할 줄은 몰랐어요. 그의 구성진 음성과 굽이굽이 서사의 골짜기를 더듬는 연극적 발성은 듣는 이가 저도 모르게 조급한 메모를 멈추고 바라볼 만큼 흡인력이 있었습니다. 선생은 바리의 독백을 읽을 때 어린 여자 아이처럼 소리를 가늘고 높게 내는가 하면, 자연스럽게 구사하는 북한 발음은 그것이 돌아가신 할머니의 것이었을 때 더욱 구슬프게 낼 줄을 알았습니다.

기래기래, 이승 저승이 달라 벨수가 웂지비. 너거 걱정이 돼서 불렀구나. 이제부텀 나 하는 얘기 잘 들으라. 수천수만 리 바다 건나 하늘 건너 갈 텐데 그 길은 악머구리 벅작대구 악령사령이 날뛰는 지옥에 길이야. 사지 육신이 다 찢게질지두 모른다. 하지만 푸르구 누런 질루 가지 말구 흰 질루만 가문 된다.
- 황석영, <바리데기>


모두들 숨을 죽이고 선생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런 다음 같은 부분을 프랑스어로 번역한 텍스트를 르 클레지오 선생이 낭독했습니다. 목소리에도 명도가 존재한다면, 그의 목소리는 밝은 노랑처럼 온화하며 창백했어요. 프랑스어 특유의, 혀를 입 안 낮은 곳에 두고 내는 먹먹한 발음과 끝이 가늘게 떨리는 음성은 황석영 선생과는 대조적으로 차분했으나, 뜻 모를 그 낯선 언어의 울림만은 참으로 서정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이어 르 클레지오의 <아프리카인>, 순서를 바꾸어 프랑스어로 먼저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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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간은 한 아버지와 한 어머니의 결과다. 우리는 그들을 인정하지 않거나 사랑하지 않을 수 있고, 그들에 대해 의혹을 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여기 존재하며, 그들 자신의 얼굴, 태도, 삶의 양식이나 기벽뿐 아니라 그들의 허망한 꿈, 희망, 손과 발가락의 모양, 눈과 머리카락의 색깔, 말투, 생각, 그리고 어쩌면 죽게 될 나이까지도 포함한 모든 것이 우리를 통과하며 흔적을 남긴다.
-르 클레지오, <아프리카인>

황석영 선생의 한국어 낭독은 조금 전 르 클레지오 선생이 발음한 낯선 언어의 의미를 우리에게 들려주었습니다.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 사이로 깊숙이 공명하던 두 언어의 텍스트는, 문학의 단단한 외피 아래 담긴 것이 실은 형식도 법칙도 필요 없는 원초적인 아름다움이었음을 새삼 깨닫게 했습니다. 그날 오후 나는 문학에 대해, 글을 쓰고 읽는 것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고 은밀하게 행복했습니다.         




* 이 글의 요약본이 <W KOREA> 2008년 1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photos by Lee Sang Hack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TV 프로그램 <생활의 달인>을 보고 있노라면 두 가지 감정이 교차한다. 몇 십 년 동안 한 우물만 파면 '진기명기 쇼'에 버금가는 직장생활을 할 수 있겠다는 긍정적인 희망이 우선이다. 이어지는 절망. 몇 푼 벌어보자고 뛰어들었던 직업전선에서 생존하기 위해 '기계'가 될 수밖에 없었던 빽 없는 아빠, 엄마의 모습이 가슴에 와서 박힌다. 그러니까 <생활의 달인>에 등장하는 분들은 고색창연한 의지를 가지고 한 길 걸어온 '장인'이 아니다. 빨리빨리 돌아가는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달인'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언젠가부터 장인 대신 달인이 만연한다는 사실이 한국 사회의 슬픈 징후로 느껴졌다. 정확한 깨달음의 시점은 <엠>을 두 번 보고 온갖 리뷰를 떠들어본 직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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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계자들은 이명세 감독을 두고 '장인'이라고 말한다. 어쩌면 장인은 '고집쟁이'의 완화된 표현일지도 모른다. <엠>은 이명세 감독의 고집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물이다. 그런데 말이다, 냉소적인 사랑 담론을 현실에서 체화하며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 '순수'는 비웃음의 대상이란 거다. 첫사랑의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내 인생의 착한 시절도 있었다며 내심 흐뭇해하면서도, 유치하고 우습다며 애써 기억을 접는다. "내 기억 속에 끊겨진 필름 한 조각"을 굳이 찾고 싶지 않다는 말이다. 설정뿐만 아니라 <엠>의 영화 구성방식은 더 고집스럽다. 친절하게 떠먹여줘도 모자를 판에 별 영양가도 없는 '떡밥'을 계속 던지다가, 나중에는 추리물이 아니고 멜로라며 뒤통수를 친다! 이미지를 보고 즐기라는데 '아침 드라마'급 이미지만 보고 살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어둠을 이용한 고차원 편집에 눈뜰 리가 없잖아. 게다가 명료한 것 좋아하는 논술세대는 'A는 A다'라는 답을 원하지, 'A는 A일까?'라는 헷갈리는 철학적 질문이 귀찮다. 아, 영화 해석도 5지 선다형으로 만들어달라니깐!


<엠>처럼 이글도 상당히 헷갈리는 전개가 되어버렸지만, 사실 나는 <엠>을 만든 이명세 장인을 욕하려는 게 아니다.(급반전!) 영화를 소개할 때 무조건 '장르'부터 들이미는 게 대세인 지금, 영화 장인보다는 영화 달인만 가득하다. 시대의 흐름에 빨리 적응해야 돈 모을 수 있다는 가르침이 미덕인 사회에서 장인은 불필요한 존재다. 달인이라면 <엠>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오픈 유어 아이즈>를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한 <바닐라 스카이>를 보라. 상업영화에선 장르 배열이 먼저고 미학은 부차적 문제다. <엠>을 본격적인 스릴러로 바꿔놓는다면 주인공의 기억상실 사이로 플래시백 인서트 컷이 날뛰면서 끝까지 미미가 유령임을 발설하면 안 된다. 문제는 이런 장르 복제가 재미를 제외하면 무슨 의미가 있냐는 거다(적어도 재미는 있을 거라는 관객의 원성이 들려온다). 그래서 장인과 달인은 다르다. 오래 일을 하면 머리가 아주 나쁘지 않는 한(!) 일의 속도는 빨라지지만, 그 와중에 깨달음을 얻고 순결한 자세로 득도해 가는 건 쉽지 않다. 이명세 감독은 그런 장인 정신을 쫓는 흔치 않은 사람이다. 때문에 존재만으로도 빛나는 깨달음을 준다. 강조하자면, <엠>의 잘못은 만듦새가 아니다. 장인 영화를 달인 영화처럼 포장해서 안 볼 사람까지 보도록 부추겨놓고 책임지지 않았다는 게 차라리 잘못이다. 오래된 메밀국수집이 리뉴얼 후에 특별 메뉴를 만들더라도, 광범위한 패스트푸드의 인기를 따라잡긴 힘든 거다.


우리는 모든 정보를 뒤섞어 무의식적으로 '생활의 달인'이 되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선 촌스럽던 과거를 빨리 잊어야 한다. 낡은 건물을 부수고 뉴욕 스타일로 다시 짓는다. 매 계절마다 새로운 옷도 필요하다. 스스로 뒤떨어진 존재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자나 깨나 노력한다. 뛰어난 적응력은 바람직한 가치다. 요령이 좋은 달인은 효율성을 높인다. 하지만 몰아치는 상황 속에서 '진짜 나'를 잊어버리진 않았는지 한번쯤 정신머리를 챙겨 볼 필요가 있다. 이명세란 장인의 존재가, 그리고 그가 만든 영화 <엠>이 지금 던져주는 화두는 바로 이게 아닐까.

P.S 사실 <엠>을 가장 재미있게 보는 방법은 '필름 끊긴 경험에 관한 영화'로 공감하는 것이다. 한 남자가 일식집에서 술먹고 필름 끊겨 필름 찾다보니 첫사랑까지 뒤지게 되더라고 정리하니, 꽤 괜찮은 스토리 아닌가. 이명세 감독은 "이 영화 필름 안 끊겨본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 같아"라는 말씀도 하셨다. 근데 왜 이렇게 예쁘게 봐줘야 하는가, 라고 묻는다면, 만든 성의만큼 성의있게 봐주는 게 예의라고 생각하니까. 그리고 이 영화 보면 볼수록 멋지기도 하다. 이해 못한다고 짓이겨서 버리는 짓은 자신의 무지를 모르는 부끄러운 애들이나 하는 짓. 문학소년의 유치한 놀음에 민망해서 못보겠다는 분은 이 영화가 취향에 안 맞는 것. 그런 사람은 배우에 낚이는 자신을 반성하며 그냥 이런 영화를 안 보면 된다.

+ P.S를 제외한 전문은 매체에 실린 것을 옮긴 것입니다. 하나라도 올리라는 대장님 말에 편법으로 얼렁뚱땅 업로딩합니다. 왜 마감 때는 바쁜데도 지루한 걸까요?


Posted by marsgirrr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