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7.11.30 <마미야 형제>: 형제는 고요했다 3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 2007.11.26 <인간실격>: 시작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2 by 알 수 없는 사용자

'마미야 형제'라고 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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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라고, 잠시 생각했습니다.

물론 그럴 리는 없습니다. '마미야'는 마미야 아키노부와 마미야 테츠노부 형제의 성(姓)이니까요. 마미야 아키노부는 홀쭉하게 살점 없는 허리를 천 벨트로 잔뜩 동여맨 차림새(이 대목에서 그만 개그맨 이윤석 씨를 떠올리고 말았습니다)를 한 양조회사 직원입니다. 여름이면 좋아하는 야구팀의 경기 스코어를 확인하기 위해 반드시 6시 전에 퇴근하고, 캔 맥주의 맛은 어떤 상황에서도 신뢰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지요. 그 밖에 12번의 맞선 경험과 12번의 퇴짜 경력이 있습니다. 서른다섯이라는 나이를 생각해보면, 마음에 둔 여자 앞에서 곧 울음을 터트릴 기세로 웅얼거리는 그의 소심함이 좀 이상스럽기도 합니다. 이번엔 그의 동생인 테츠노부를 볼까요. 마미야 테츠노부는 온몸이 둥그렇게 살이 찐 초등학교 직원입니다. 주말에 외출할 때면 형이 탐탁지 않아하는 검정색 가죽 헤비메탈 재킷을 입고요, 서른두 살인데도 이변이 없는 한 커피 우유를 차게 식혀서, 혹은 뜨겁게 데워서 내내 들이키는 사람입니다. 형과 마찬가지로 테츠노부도 변변한 연애 경험이 없습니다. 그러나 형과는 달리 안 되더라도 일단 돌진하고 보는 타입이지요. 짧은 연애(실은 일방적이기 그지 없는 짝사랑)가 끝날 때마다, 테츠노부는 동네 외곽의 고가선로를 지나는 신칸센을 보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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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는 둘이 삽니다. 둘이 함께 맥주와 커피우유를 마시고, 둘이 함께 퍼즐 잡지를 탐독하고, 둘이 함께 책을 읽고, 둘이 함께 동네 츠케면 가게에서 외식하고, 둘이 함께 스포츠 경기를 보거나 음악을 듣고, 기분이 좋지 않은 길을 갈 때면 둘이 함께 소리 내어 노래를 부르며 갑니다. 그리고 이것이 마미야 형제의 가장 희한한 점이죠.



"마미야 형제에게는 지금껏 연인이 있었던 적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실연이라고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저 혼자 꾸준히 쌓아 올린 호의를 짓밟히는 데 지나지 않는다. 팍삭 혹은 와지끈. 양치도 샴푸도 게을리하는 법 없고, 심성 고운 마미야 형제이긴 했으나, 실제로 그들과 면식이 있는 여자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볼품없는, 어쩐지 기분 나쁜, 집 안에만 틀어박혀 사는, 너저분한, 도대체 그 나이에 형제 둘이서만 사는 것도 이상하고, 몇 푼 아끼자고 매번 슈퍼마켓 저녁 할인을 기다렸다가 장을 보는, 애당초 범주 밖의, 있을 수 없는, 좋은 사람인지는 모르지만 절대 연애 관계로는 발전할 수 없는...' 남자들이었다."
- 에쿠니 가오리, <마미야 형제>



: 그것 참 단어 하나하나가 싹퉁바가지인 품평입니다마는, 두 형제에 대한 책의 묘사를 곱씹어보면 또 그리 반대할 수만은 없는 지적이기도 합니다. 아키노부가 식은 땀을 흘리며, 혹은 테츠노부가 손수 녹음한 음악 CD를 저돌적으로 내밀며 만약 내게 사랑을 고백해온다면, 안타깝지만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마미야 상, 스미마셍."

재미있는 것은 이야기의 진행 방식, 혹은 소설의 시선입니다. 이야기에 파장을 일으키는 주요 사건들은 대부분 마미야 형제 본인들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습니다. 명색이 '타이틀 롤'인데도 말이죠. 대신 마미야 형제의 주변 인물들의 사건 사고가, 바람 없는 바다 같은 형제의 자분자분한 일상에 틈입하여 솜씨 있게 직조됩니다. 형제의 삶은, 주변 사람들의 불륜, 이혼, 막다른 연애 같은 풍랑이 일 때면 이따금씩 따라 흔들릴 뿐입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물결은 바다에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못하죠. 광고 카피는 '리얼 순정 브라더스, 여친 만들기 대작전!'이지만, 책은 오히려 형제의 일상을 촘촘하게 따라가는 데 충실한 듯 합니다.



" "둘이서 살자. 조용히. 지금까지처럼." 뭐야. 형을 침실로 데려가면서 테츠노부는 이해할 수 있었다. 동생의 행복을 바라면서도, 형은 쓸쓸한 거다. "화장실 말고 다른 데 토하지 마, 알았지?" 어조가 부드러워졌다. 언젠가 여기를 나가게 돼도. 테츠노부는 생각한다. 여기를 나가게 돼도, 나는 형을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그게 누구든 - 지금은 우선, 사오리의 얼굴을 떠올린다 - 내 여자도 그러길 바랄 것이다." - 에쿠니 가오리, <마미야 형제>



: 이 책을 야금야금 읽다 보면, 마미야 형제네 집에 놀러가서 함께 직소 퍼즐을 맞추고 다이아몬드 게임을 하고 싶어집니다. 향신료를 이것저것 넣고 야채가 완전히 흐물흐물해질 때까지 푹 끓인 테츠노부의 카레도 맛보고 싶고요. 사실 에쿠니 가오리의 책을 읽고 이런 생각을 한 것은 정말이지 처음입니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편협한 감상이긴 합니다만, 그동안 "하지만 나, 아무에게나 그렇게 하진 않으니까" 같은 그녀의 호흡 짧은 문체를 읽을 때마다 "그만둬, 그런 어리광 따위!"라고 일본어 번역투로 짜증내고 싶었거든요.

조용한 사람의 반짝반짝함은 그의 일상을 찬찬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느낄 수 없겠다, 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 <W KOREA> 2007년 4월호에 이 글의 요약본이 게재되었습니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책을 쓰고 책을 읽는다는 것.
책을 추천하고 책을 추천 받는다는 것.
책을 선물하고 책을 선물 받는다는 것.
그것만큼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이 또 있을까?

- 다자이 오사무, <인간 실격>





: 옳습니다. 단순간결하므로 완전무결한 문장이 아닌가 합니다.    
무려 다섯 번이나 자살 시도를 한 끝에 기어이 마흔 전에 요절한 작가가 남긴 말이라기엔 퍽 안온합니다마는, 그런 점에서 '서로를 이해'한다는 것에 회의적인 사람이 책에 대해 쓰기에 앞서 인용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적당하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책을 읽다가 밑줄을 긋고 싶은 문장과 맞닥뜨렸을 때,
혹은 다른 사람의 밑줄을 슬쩍 넘겨다 보고싶을 때 들러주셨으면 합니다.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