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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1.08 <미네르바 성냥갑>: 사이먼 코웰이 기호학자였다면? 7 by 알 수 없는 사용자
TV를 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메리칸 아이돌>의 사이먼 코웰을 '8개국어에 능통한 기호학자이자 철학자, 불세출의 유머감각을 가진 칼럼니스트, 베스트셀러 소설가' 버전으로 업그레이드 하면 움베르토 에코가 될 지도 모른다고요.
, 압니다. 만약 움베르토 에코 아저씨가 들었다면 뭬야?!를 부르짖으며 일 디보(Il Divo) CD를 손날 격파할 소리지요. 하지만 유들유들함에 냉소를 가미한 후 약간의 유머감각을 곁들여 쏟아내는 사이먼 코웰의 독설은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움베르토 에코의 화법과 얇디 얇은 교집합을 이루는 것도 사실입니다. 절대로 틀린 얘기를 하는 법은 없다는 점이 특히 그렇습니다.   

자, 그렇다면 이쯤에서 아래의 글을 읽어BOA요



글을 잘 쓰는 방법

인터넷에서 나는 글을 잘 쓰는 방법에 대한 일련의 지침들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것을 약간 수정하여 내 것으로 삼았다. 많은 사람들, 특히 글쓰기 학교에 다니는 사람들에게 유용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 두운을 피하라. 비록 올빼미들을 유혹할지라도. (역주: 이탈리아 어로 allitterazione(두운), allettare(유혹하다) 그리고 allocco(올빼미)는 두운이 일치한다)
2. 접속사를 피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오히려 필요할 때는 쓰도록 한다.
3. 기성품 문장들을 피하라. 그건 <다시 데운 수프>와 같다.
4.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라. 자신을 살찌우게 하니까.
5. 상업적 기호&약자etc.를 사용하지 마라.
6. 괄호는 (꼭 필요해 보일 때도) 담론의 흐름을 방해한다는 것을 (언제나) 기억하라.
7. 말없음표들의…… 소화 불량에 걸리지 않도록 주의하라.
8. 가능한 한 따옴표를 적게 사용하라. 그것은 "목표"가 아니다.
9. 절대로 일반화하지 마라.
10. 외국어는 절대 엘리건트한 스타일을 만들지 않는다.
11. 인용을 줄여라. 에머슨이 올바르게 지적하였듯이 <나는 인용을 증오한다. 단지 네가 아는 것만 말해라>.
12. 비유는 기성품 문장과 같다.
13. 과잉 설명을 하지 마라. 똑같은 말을 두 번 반복하지 마라. 반복한다는 것은 불필요하다(과잉이라는 말은 독자가 이미 이해한 내용을 불필요하게 다시 설명하는 것을 의미한다).
14. 단지 똥 같은 놈들이나 저속한 말을 사용한다.
15. 언제나 대충 구체적이도록 하라.
16. 단 하나의 단어로 문장을 만들지 마라. 없애라.
17. 지나치게 과감한 은유들을 조심하라. 그것은 뱀의 비늘 위에 돋은 깃털과 같다.
18. 쉼표는, 정확한 곳에, 넣도록 하라.
19. 콜론과 세미콜론을 구별하라: 비록 쉽지 않을지라도.
20. 만약 적절한 이탈리아 어 표현을 찾지 못하더라도 절대로 사투리 표현에 의존하지 마라. <페소 엘 타콘 델 부소.> (역자 주: peso el tacon del buso. 베네치아의 사투리 속담으로, 병보다 오히려 치료가 더 나쁜 경우를 가리킨다.)
21. 어울리지 않는 은유를 사용하지 마라. 비록 <노래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것은 마치 탈선한 백조 같다.
22. 정말로 수사학적 질문이 필요한가?
23. 간략하게 하라. 긴 문장을 피하고, 가능한 적은 숫자의 단어 안에다 자신의 생각을 압축하도록 노력하고-또는 삽입구를 넣지 마라. 그것은 불가피하게 산만한 독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드니까- 그리하여 담론이 분명히 매스 미디어의 권력에 지배되는 우리 시대의 비극들 중 하나를 이루는(특히 불필요하거나 필수 불가결하지 않은 자세한 정보들로 쓸모없게 채워졌을 경우) 정보의 오염에 기여하지 않도록 하라.
24. 과장하지 마라! 감탄 부호를 적게 써라!
25. 야만적 표현을 좋아하는 최악의 <팬들>이라도 외국어를 복수로 만들지 않는다.
26. 외국어 이름을 정확하게 써라. 가령 보둘레르, 루즈웰트, 니채 등처럼.
27. 언급하는 저자나 등장인물들을 완곡하게 표현하지 말고 직접 지명하도록 하라. 19세기 롬바르디아 출신의 최고 작가이자, <5월 5일>의 작가도 그렇게 했다.
28. 글의 첫머리에서 독자의 환심을 사기 위해 <감사의 표시>를 하도록 하라(그런데 혹시 여러분이 너무나도 멍청해서 내가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29. 철자를 자새하게 학인하라.
30. 반어법은 얼마나 지겨운 것인지 말할 필요도 없다.
31. 너무 자주 문단을 바꾸지 마라.
최소한 불필요할 때에는.
32. <위엄 있는> 1인칭 복수를 절대 쓰지 마라. 우리는 그것이 나쁜 인상을 준다고 확신한다.
33.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지 마라. 오류를 범하게 될 것이며, 따라서 실수할 것이다.
34. 논리적으로 결론이 전제에서 도출되지 않는 글을 쓰지 마라. 만약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한다면, 전제가 결론에도 도출될 것이다.
35. 옛날 표현이나 <아팍스 레고메나>처럼 이례적인 어휘들, 리좀 같은 <심층 구조>를 너무 많이 사용하지 마라. 그것들은 아무리 그라마톨로지적 <차연>의 현현이나 해체론적 표류에의 권유처럼 보일지라도-만약 그것이 극도로 세심한 문헌 비평 의식과 함께 읽는 삶의 세밀한 검토에 의해 논박의 여지가 있는 것으로 드러날 경우 더 나쁠 것이다-어쨌든 수신자의 인지 역량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36. 너무 장황하지 않도록 하라. 그렇다고 그보다 덜 말하지 않도록 하라.
37. 완성된 문장이 되어야 하는데
(1997)
- 움베르토 에코, <미네르바 성냥갑>

사용자 삽입 이미지

실제로 보는 표지는 이것보다 양호합니다.





한동안 지하철 4호선과 7호선에서 절찬리 애독했던 <미네르바 성냥갑>은 움베르토 에코가 얼마나 귀여운 독설가인가, 그리고 그 톡쏘는 말 맛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한국어 역자는 또 얼마나 귀엽지 못한가를 생각하게 했습니다. 이탈리아의 유명 주간지 '에스프레소'에 연재되었던 짧은 칼럼들을 모은 책이고요, 국내에 몇 년 앞서 번역 출간된 전작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보다 좀더 날카로운 주제를 좀더 날카로운 말투로 건드렸다는 인상입니다... 저... 거기... 혹시 지금 주무시는 건가요...? 잠깐만요, 거의 끝나가거든요? 그러니까 에... 정치나 미디어 같은 격렬한 주제보다는 맛 없고 소화도 안되는 기내식에 대한 철학이 한결 투철한 - 말하자면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사람 같은 - 분이라면 <세상의 바보들에게...>를 먼저 읽으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진짜 만화책만큼이나 낄낄거리면서 읽게 된다니까요.    
솔직히 말해서, 움베르토 에코의 이 글이 뭐가 웃긴지 모르겠다는 사람과는 도저히 친해질 자신이 없지 뭐예요.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